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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볼만한곳 덕수궁 공부하고 가요.

by ohmyworld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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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볼만한곳 덕수궁 공부하고 가요.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살고 있던 저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 1593년에 피난에서 서울로 돌아 온 선조가 월산대군이 살고 있던 이 저택을 임시 왕궁으로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덕수궁이 있던 곳의 이름이 정릉동이었던 것에서 정릉행궁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만, 이것을 광해군이 경운궁으로 명명하고 수년간 여기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후 1615년에 광해군이 창덕궁에 거처를 옮겨, 그 후 274년간 이 왕궁은 주인부재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1897년 고종이 경운궁을 수리하고 원래의 왕궁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후 아관파천(명성황후암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한 사건)의 다음 해에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김으로 다시 왕궁으로써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고종이 황제로서 재위한 1907년까지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고종의 차남인 순종이 1907년에 황제로 즉위하고 창덕궁에 거처를 옮겼지만 경운궁에 남은 고종의 장수를 비는 의미로 덕수궁이라 명명하여, 이후 경운궁은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덕수궁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덕수궁

1.대한문

덕수궁의 정문이며 왕궁의 정문으로 단층인 것은 이 문 뿐입니다.


2.금천교

경복궁은 영제교, 창덕궁은 금천교, 창경궁은 옥천교가 있는 것처럼 덕수궁에는 금천교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왕궁에 풍수지리학 상, 명당수가 있으면 길하다는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왕궁 내에 금천이라는 작은 강을 만들어 그 위에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다리 바닥에는 삼도가 있고 삼도의 중앙에는 양끝보다 일단 높고 넓은 어도가 있습니다. 이 어도는 왕만이 다닐 수 있습니다.


3. 중화문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에 해당합니다. 


4.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으로 조선왕조 후기에 사용되었습니다. 중화전은 일반적인 왕궁의 정전의 사용목적에 맞게 왕의 즉위식, 가례식, 외국사신의 환영의식 등 공식행사가 이루어졌던 장소였습니다. 중화문에서 중화전에 이은 조정의 마당에는 삼도와 계급을 나타내는 품계석이 제일 높은 정일품에서 제일 낮은 종구품까지 18 단계로 나뉘어 있고, 월대라는 踏み石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5. 석어당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2층 건물이며 선조가 살았던 장소입니다. 석어당의 이름도 옛날, 왕이 계셨던 집을 의미합니다. 석어당의 조금 색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드물게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 것과 2층 건물이면서 장식이 없는 민간 건축양식이라는 점이다. 


6. 덕홍전

주로 외국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되던 편전입니다. 


7.함녕전

고종황제의 침전으로서 사용되던 건물입니다.


8.정관헌

왕궁 내에 건립된 최초의 서양식건물. 고종황제가 다과회를 열거나 음악을 들었던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있고 빨간 벽돌이 사용되었습니다. 


8. 즉조당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즉위식을 행한 역사적인 장소이며 왕의 침전이었습니다. 즉조라는 이름에는 왕이 즉위한 곳이라는 의미이고 궁의 침전으로서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간결하고 훌륭한 형식이 특징입니다.


9.석조전 앞의 정원과 분수

한국 최초의 유럽식 정원입니다.

덕수궁 석조전덕수궁 석조전 서양식 정원

10. 앙부일구

가마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해시계라는 라는 것으로 앙부일구라는 이름이 붙여짐. 해시계 뿐 만이 아니라 절기도 알려준 앙부일구는 세종대왕 때 장영실이 최초로 만든 것이다.


11. 석조전

우리나라 최초의 르네상스 건물이며 석조전과 관련한 무엇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1946년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 조선반도의 장래를 의논하기 위해 개최된 미소 공동위원에의 최초 예비회담이 이곳에서 열린 것입니다.

덕수궁 수문장교대식덕수궁 수문장교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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