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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이야기

주님 세례 축일 복음 묵상 - 요르단 강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음성

by ohmyworld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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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 나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세례의 의미 다시 찾기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화려한 기적이 아닌, 겸손하게 물에 잠기시는 그분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오늘 묵상을 통해 성과와 결과에 지친 나를 내려놓고, '사랑받는 자녀'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은총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되는 기점, 교회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 서른 즈음의 청년 예수님께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시는 순간입니다. 이 날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신앙인인 우리 각자가 자신의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는 정체성 회복의 날이기도 합니다.

1. 겸손의 극치 :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 틈에 서시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가시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당시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느님의 아들께서 굳이 죄를 씻는 예식에 참여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조차 이를 만류하며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라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하여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가 갖는 깊은 신학적 의미, 바로 '연대성(Solidarity)'을 발견합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 틈에 서시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신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아지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구원자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요르단 강의 물속으로 들어가신 행위는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 인간의 처지와 똑같이 되시겠다는 강생(Incarnation)의 신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이는 화려한 성공이 아닌, 조용한 시작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그분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과 하느님의 뜻

예수님의 공생활은 웅장한 선포나 기적이 아니라,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평범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방식 또한 '드러냄'이 아닌 '스며듦'이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 가톨릭 상식: 주님 세례 축일의 전례적 의미
주님 세례 축일은 성탄 시기의 마지막 날이자 연중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분기점입니다. 이날 사제는 주로 흰색 제의를 입으며, 예수님의 신성이 공적으로 드러난(공현)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념합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를 '신현(Theophany)'이라고 부르며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과 하느님의 뜻
주님 세례 축일의 전례적 핵심인 성령 강림과 하느님의 현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2. 하늘의 선언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하느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11).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명과 정체성을 확증하는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기적을 행하시거나, 십자가의 희생을 치르시기 '이전'에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은 어떠한 성취나 업적의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임을 보여줍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 임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기준인 성과(Doing)와 하느님의 기준인 존재(Being)를 대비시켜 신앙인의 올바른 가치관을 성찰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성과, 학업 성적, 재산 규모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며 스스로를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주님 세례 축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너는 누구의 자녀이냐?"라고 말입니다.

3. 나의 세례 묵상 : 사명으로 부르심 받은 존재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세례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다." 이 음성은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흔들릴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뿌리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법

세례는 신앙 생활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후 광야의 유혹을 거쳐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듯,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원 역시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명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 사명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작은 이들과 연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례 받은 이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법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았습니다.
⚠️ 신앙 생활의 주의점 : 타성에서 벗어나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 때 받은 흰 옷을 깨끗이 보존하며, 등불을 밝혀 든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 생활(타성)은 하느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십자가라는 거대한 수난으로 이어졌지만, 그 모든 여정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요르단 강에서 확인받은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확고한 자의식이었습니다. 삶이 버겁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하찮게 느껴질 때, 이 축일의 메시지를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출처: 가톨릭 교리서(CCC) 1213항 참조]

4. 묵상을 마무리하며... 결과가 아닌 존재로 머무르기

주님 세례 축일을 보내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합니다. 화려한 성공이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모습 그대로의 당신을 기쁘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묵상을 마무리하며: 결과가 아닌 존재로 머무르기
글을 마무리하며 독자들이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요르단 강가의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 푹 잠겨보십시오. 그리고 내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나는 너를 통해 기쁨을 얻는다." 이 믿음이 한 해를 살아가는 단단한 초석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본 콘텐츠는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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