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1장 "이름을 벗어나야 도(道)를 본다."
노자 도덕경을 읽기 시작한 지 두어달이 넘어가네요. 제가 읽으며 이해하기에는 참 어려운 철학이기는 하지만 올해 목표 중 하나는 노자 도덕경을 꼭 완독하는 것입니다.
일단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하나하나 세세하게 읽으며 가다보면 포기하게 될 것 같아서 쉬어가면서 하루에 조금씩 1장 혹은 반장씩만 읽고 있어요.
더 중요한 것은 한자를 따라 써 보는 것인데 외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고 한 번씩 따라쓰다보면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한자쓰기를 하면서 뇌도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 원문 (도덕경 제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 번역
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 없이 보면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을 가지고 보면 그 끝자락만 본다.
이 두 가지는 같은 데서 나왔지만, 이름은 다르다.
이 둘을 함께 '현묘함(깊고 오묘함)'이라 하며,
더 깊은 현묘함은 모든 신비로움의 문이다.
🌌 해설 "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노자 도덕경에서 말하는 도(道)라는 것이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도덕경』의 첫 문장은 고대 중국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이 문장은 우리가 흔히 진리나 절대적 원리를 언어로 표현하려 할 때 겪는 한계를 지적하는데요. 노자는 이 세상의 근원인 ‘도(道)’는 인간의 언어, 개념, 이름이라는 틀에 갇힐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름 붙이고 설명할 때, 이미 그것은 본래의 참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정의해보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깊이와 다양한 형태가 하나의 정의로 축소됩니다.
도(道)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거나 개념화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는 것과 같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무명과 유명 "존재의 두 가지 양면" 노자 도덕경 1장.
노자는 우주의 근원을 설명할 때 ‘무명(無名)’과 ‘유명(有名)’, 즉 이름 없음과 이름 있음을 대조합니다.
- 무명(無名) - 형체 없고, 개념화되지 않은 상태. 천지의 시작. 근원적 실재.
- 유명(有名) - 이름 붙여진 것들. 우리가 인식하고 분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 만물의 어머니.
이 둘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낳고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무명은 형상 이전의 도이고, 유명은 도가 드러난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는 도가, 보이는 세상을 낳는다는 것이죠.
🧘 욕심 없이 보면 ‘묘(妙)’를 본다
“항상 욕심 없이 보면 그 ‘묘(妙)’를 보고,
항상 욕심을 가지고 보면 그 ‘요/효(徼)’를 본다.”
여기서 핵심은 「욕심(욕망)」입니다.
노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가 보게 되는 진실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 진리인 듯 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진리는 정말 변함없이 우리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 같죠?
- 욕심 없이 보는 자 - 도의 깊은 ‘묘함(신비)’을 본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
- 욕심을 가진 자 - 도의 ‘끝자락’, 즉 외형적인 모습만 본다. 이름과 형태에 집착함.
이는 곧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판단을 멈추고, 욕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근원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작업은 너무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를 알고 나를 둘러싼 우주의 섭리를 알기 위해서는 - 어쩌면 당장 물질적인 가치가 없어보여도 - 이러한 마음 공부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 현(玄)의 반복은 끝없는 신비의 문
노자는 “현지우현(玄之又玄)”, 즉 ‘깊고 또 깊다’고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도란 어떤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며, 계속해서 더 깊은 차원이 존재함을 뜻합니다.
“중묘지문(衆妙之門)” – 이 끝없는 현묘함은 모든 신비의 문입니다.
노자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고, 자신의 욕심과 편견을 내려놓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이런 노자의 가르침은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더더욱 와닿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도’는 체험하는 것이다
『 노자 도덕경 1장 』 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 진리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 이름 붙이는 순간, 우리는 도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 욕망을 내려놓으면 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다.
- 도는 끊임없이 열리고, 끝없이 신비롭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삶의 방향을 잃고 있거나, 세상의 본질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노자 도덕경 1장은 그 여정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더 확장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계를 열고 나아감에 있어 반드시 고민하고 깊이 성찰해 볼 철학인 것 같아요.
그랬을때 비로소 옳은 길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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