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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고요한 성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내면의 성》을 읽고
500년 전, 한 수녀님이 그려 준 영혼의 지도
하루를 보내다 보면 마음이 유난히 시끄러운 날이 있어요.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오가는 말은 많은데,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날이요. 그럴 때면 저는 오래된 책 한 권을 조용히 떠올려요. 50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와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무는 《내면의 성》이에요.

이 책은 아주 단순한 그림 하나에서 출발해요. 우리의 영혼이 하나의 커다란 성이라는 그림이에요. 그 성은 맑은 수정, 혹은 하나의 투명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져 있고, 안에는 수많은 방이 차례로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가장 깊은 중심에는 하느님께서 머물러 계신다고 해요.
오늘은 그 성의 문을 함께 열어 보려고 해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 ◇ ◇
아빌라의 데레사는 어떤 분이었을까요
아빌라의 데레사는 1515년 스페인 아빌라에서 태어났어요. 스무 살 무렵 카르멜 수도원에 들어갔고, 이후 오랜 세월 병약한 몸과 흔들리는 기도 생활 사이에서 씨름했다고 전해져요. 그런데 그 길고 고단한 시간이 오히려 그녀를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빚어 주었어요.
마흔일곱 살 무렵에는 수도원 개혁에 나서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고(1562),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카르멜 개혁의 큰 줄기를 이루었지요. 1622년에 성인품에 올랐고, 1970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학자로 선포되었어요. 성녀 대(大) 데레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답니다.
제가 이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척 인간적이어서예요. 유머가 있고, 솔직하고, 자기 부족함을 감추지 않아요. 그래서 그녀의 글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가르침이라기보다, 옆에 나란히 앉아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다정하게 읽혀요.
《내면의 성》은 어떤 책일까요
이 책은 1577년, 데레사가 예순을 넘긴 나이에 썼어요. 몸은 자주 아팠고 맡은 일도 많았지만, 영적 지도자의 권유를 받아 다시 펜을 들었지요. 그해 여름에 시작해 늦가을에 마쳤다고 하니, 오래 품어 온 이야기가 한꺼번에 흘러나온 것 같아요. 책의 바탕에는 복음의 한 구절이 놓여 있어요.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요한 14,2
데레사는 이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영혼 안에 일곱 겹의 거처가 있다고 그렸어요. 번역본에 따라 ‘궁방’, ‘처소’라고도 옮기는데, 이 글에서는 ‘거처’라고 부를게요. 우리나라에서는 《영혼의 성》이라는 제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요.
이 책이 특별한 건, 먼 산 위의 성자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기도하고 싶지만 마음이 자꾸 흩어지는 사람, 열심히 살지만 어딘가 메마른 사람, 그런 평범한 우리를 위해 쓰인 지도 같아요.

일곱 개의 거처를 지나며
먼저 여정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게요.
첫째 거처 자기를 알아 가는 문, 겸손
둘째 거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 꾸준함
셋째 거처 정돈된 삶의 방, 안주하지 않는 용기
넷째 거처 샘물이 솟는 방, 받아들이는 기도
다섯째 거처 누에가 나비가 되는 방, 나를 내어 주는 사랑
여섯째 거처 깊어지는 사랑의 방, 시련 속의 친밀함
일곱째 거처 중심의 방, 고요한 평화와 사랑의 실천
첫 번째 거처, 자기를 알아 가는 문
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기도예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마음을 조금 돌려 내 안을 바라보는 일이지요. 다만 데레사는 첫 거처에 들어선 영혼이 아직 바깥의 소음을 많이 데리고 있다고 말해요. 성 둘레에 파충류와 벌레가 우글거린다는 표현까지 쓰면서요. 걱정, 욕심, 체면, 바쁨 같은 것들이겠지요.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아는 것’이에요. 나를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요. 잘난 나도, 초라한 나도 모두 내 모습이라는 걸 인정할 때 겸손이 자라나요. 책 후반부에서 그녀는 겸손을 ‘진리 안에서 걷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참 좋은 정의라고 늘 생각해요.
두 번째 거처, 부르심에 응답하는 방
두 번째 거처에 오면 마음에 하나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요. 좋은 책의 한 구절, 누군가의 다정한 말, 문득 찾아온 아픔 같은 것들을 통해 하느님이 살며시 부르시는 소리요. 하지만 이 방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아요. 돌아가고 싶은 마음, 예전의 습관이 자꾸 발목을 잡고, 시작한 기도를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니까요.
여기서 데레사가 강조하는 건 아주 소박한 한 가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에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기, 실패해도 다시 앉아 기도하기. 대단한 결심보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우리를 다음 방으로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제겐 큰 위로가 되었어요.
세 번째 거처, 정돈된 삶의 방
세 번째 거처는 제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방이 아닐까 싶어요. 삶이 단정하고, 기도도 성실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사는 방이에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데레사는 바로 여기서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요. 혹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메마름이 찾아올 때 쉽게 서운해지지는 않는지 하고요.
복음 속 부자 청년이 떠올라요. 계명을 모두 지켰지만, 더 나아가라는 초대 앞에서 슬퍼하며 돌아선 사람이요. 이 방의 초대는 ‘더 잘하라’는 재촉이 아니라, 내 손에 쥔 것을 조금 내려놓고 더 자유로워지라는 부드러운 손짓 같아요.
네 번째 거처, 샘물이 솟는 방
네 번째 거처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져요. 지금까지는 내가 노력해서 걸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받는 기도’가 시작되거든요. 데레사는 두 종류의 물 이야기를 들려줘요. 하나는 멀리서 수로를 따라 끌어오는 물이에요. 애써 생각하고 묵상하며 얻는 기도이지요. 다른 하나는 샘 자리에서 저절로 솟아 가득 채우는 물이에요. 하느님이 직접 건네시는 고요함이지요.
이 방에서 들려주는 가장 유명한 가르침이 있어요. 영혼의 성장은 많이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말이에요. 머릿속이 복잡해서 기도가 안 된다고 자책하던 마음이 이 한 문장 앞에서 스르르 풀려요. 잘 말하지 못해도, 잘 집중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곁에 머무르면 괜찮다는 거니까요.
다섯 번째 거처, 누에가 나비가 되는 방
다섯 번째 거처의 상징은 누에예요. 누에는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은 뒤, 마침내 하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지요. 데레사는 이 모습을 빌려 영혼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신비를 이야기해요. 나 중심의 옛 삶이 조용히 죽고,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녀는 여기서 아주 현실적인 기준을 하나 더해요.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거예요. 하늘을 향한 사랑이 땅 위의 사랑으로 확인된다니, 참 단단하고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여섯 번째 거처, 깊어지는 사랑의 방
여섯 번째 거처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아픔도 함께 깊어지는 방이에요. 데레사는 이 방을 ‘약혼’에 비유해요. 서로를 깊이 알아 가고, 마음은 이미 이어졌지만 아직 온전히 함께하지는 못한 시간이지요. 그래서 그리움도 크고 시련도 커요. 오해와 비판, 몸의 병, 마음의 어둠까지 이 방에서 찾아오곤 해요.
그럼에도 이 방에서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있어요. 바로 그리스도의 인간성이에요. 아무리 높은 기도의 자리에 올라도 예수님의 삶과 수난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해요. 높이 날수록 발은 오히려 낮은 곳에 닿아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 주는 것 같아요.
일곱 번째 거처, 중심의 방
마지막 일곱 번째 거처는 성의 가장 깊은 중심이에요. 여기서 하느님과 영혼은 ‘영적 결혼’이라 부를 만한 깊은 일치에 이르러요. 그런데 이 방의 풍경은 생각보다 고요해요. 황홀한 체험이 계속되는 곳이 아니라, 폭풍이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는 깊은 평화가 자리한 곳이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 정점에서 그녀가 건네는 말은 ‘일하라’는 거예요. 기도의 목적은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삶이라는 것. 마르타와 마리아가 함께 걸어야 한다고, 곧 앉아서 듣는 마음과 일어나 섬기는 손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해요. 제 마음에는 이 대목이 책 전체의 결론처럼 남았어요.
◇ ◇ ◇

제가 이 책에서 느낀 것들
성은 멀리 있지 않아요.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건, 성이 어딘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하느님을 만나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데레사는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아요. 이미 당신 안에 계시니, 안으로 걸어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요. 그 말이 참 다정하게 들렸어요.
첫 방에 있어도 부끄럽지 않아요. 일곱 거처를 보다 보면 은근히 비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어요. 나는 몇 번째 방쯤일까, 왜 이렇게 더딜까 하고요. 하지만 어느 방에 있든 중요한 건 한 걸음이라도 안으로 향하는 마음이에요. 지금 나의 자리를 조용히 인정해 주는 것, 여정은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애씀과 내려놓음, 둘 다 필요해요. 앞의 방들에서는 스스로 걷고, 뒤의 방들에서는 은총에 이끌려 걸어가요. 애쓰는 시간이 없으면 씨앗을 심지 못하고, 내려놓는 시간이 없으면 싹이 트지 못하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맡기는 마음이요.
기도는 결국 사랑으로 돌아와요. 가장 깊은 방의 끝에서 ‘일하라’는 말이 나온다는 게 저는 참 아름답게 느껴져요. 고요함은 도피가 아니라 채움이고, 내면의 깊이는 결국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로 드러난다는 뜻이니까요. 안으로 깊어질수록 밖으로 넉넉해지는 사람,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끄러운 세상일수록 성이 필요해요. 알림음과 소식이 끊이지 않는 요즘, ‘내면’이라는 말이 사치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마음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꼭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소란의 문을 살며시 닫고 내 안의 성문 앞에 서 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결이 달라져요.
데레사가 기도서에 끼워 두었다고 전해지는 짧은 글귀도 함께 나눌게요. 제 나름대로 옮겨 보았어요.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게 하여라.
아무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게 하여라.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하느님만은 변하지 않으신다.
오늘,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답을 서두르지 않아도 좋아요. 조용히 마음에 담아 두기만 해도 충분해요.
◇ 나는 지금 어느 거처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나요?
◇ 요즘 내 마음 둘레를 시끄럽게 하는 ‘벌레’는 무엇일까요?
◇ 많이 생각하는 대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오늘 누구에게 ‘마르타의 손’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 ◇ ◇
곧 10월 15일은 성녀 데레사를 기념하는 축일이에요. 하지만 그날이 아니어도 좋아요.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안에 성이 하나 있다고 떠올려 보세요.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가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여러분의 하루가 고요한 빛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요. 오늘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감주는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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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면의 성》의 흐름을 바탕으로 쓴 개인적인 묵상이에요.
원문의 정확한 표현은 번역본에서 함께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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