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함께 읽기 · 20장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다들 잔치 중인데 나만 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날, 노자가 건네는 가장 솔직한 위로
먼저 세 줄로 읽어요
- 20장은 노자가 자기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장이에요. ‘나만 홀로(我獨, 아독)’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와요.
- 세상은 밝고 바쁘고 똑똑한데, 노자는 스스로 어둡고 멍하고 어리석은 듯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끝까지 읽으면 이건 푸념이 아니라 뒤집기예요.
- 열쇠는 마지막 문장이에요. 내가 남과 다른 건 모자라서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근원(食母, 식모)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
이 글의 순서
- 1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 2‘네’와 ‘응’, 그 거리는 얼마일까
- 3두려움의 목록은 끝이 없다
- 4잔치와 갓난아기
- 5돌아갈 곳 없는 어리석은 마음
- 6환한 사람들, 멍한 나
- 7바다와 바람, 그리고 식모
- 8낱말 정리와 흔한 오해
- 9오늘 우리에게 남는 생각
- 10오늘 해볼 작은 실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즐거워 보이고, 다들 뭔가를 척척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 드는 날, 있으시죠?
도덕경 20장은 바로 그 기분에서 시작해요. 노자라고 하면 구름 위에 앉은 도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장에서만큼은 노자도 우리처럼 쓸쓸해하고, 뒤처진 듯 느끼고, 남들과 자신을 견줘 봐요. 그래서 도덕경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장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쓸쓸함은 끝에 가서 뒤집혀요. 어떻게 뒤집히는지, 천천히 같이 읽어봐요. 한자가 낯설다면 한글 독음과 풀이만 따라 읽어도 충분해요.

먼저, 20장 전체를 한 번에
세부 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말로 옮긴 20장을 시처럼 한 번 쭉 읽어볼게요. 뜻이 안 잡혀도 분위기만 느껴보세요.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네” 하는 대답과 “응” 하는 대답, 그 차이가 얼마나 될까?
아름다움과 추함, 그 거리는 또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득하구나, 그 끝이 보이질 않네.
뭇사람들은 희희낙락, 큰 잔칫상을 받은 듯 봄날 누대에 오른 듯한데,
나만 홀로 고요히 머물러 아무 낌새도 없으니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기 같구나.
지친 몸으로 돌아갈 곳도 없는 사람 같구나.
뭇사람들은 모두 넉넉한데, 나만 홀로 다 빠뜨리고 온 듯하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흐리멍덩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환히 빛나는데, 나만 홀로 어두운 듯하고
세상 사람들은 꼼꼼히 따지는데, 나만 홀로 멍한 듯하네.
고요하기는 깊은 바다 같고, 바람처럼 그침 없이 흘러가는 듯.
뭇사람들은 저마다 쓸모가 있는데, 나만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러운 듯하네.
나만 홀로 남들과 다른 건,
어머니 같은 도(道)의 젖줄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네.
이 장은 구조가 아주 단순해요. 계속 ‘뭇사람’과 ‘나’를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거든요.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무엇을 | 뭇사람 · 세상 사람 (眾人 · 俗人) | 나 (我獨) |
|---|---|---|
| 분위기 | 熙熙 희희낙락, 잔치 중 | 泊 고요히 정박한 배 |
| 가진 것 | 有餘 다들 넉넉함 | 若遺 다 빠뜨린 듯함 |
| 머리 | 昭昭 · 察察 환하고 꼼꼼함 | 昏昏 · 悶悶 어둡고 멍함 |
| 쓸모 | 有以 저마다 할 일과 재주가 있음 | 頑似鄙 고집스럽고 촌스러운 듯 |
| 마음의 자리 | 바깥의 잔치, 바깥의 평가 | 貴食母 어머니 같은 근원 |
왼쪽은 화려하고 오른쪽은 초라해 보여요. 그런데 마지막 줄에서 판이 뒤집혀요. 이제 한 대목씩 읽어봐요. 붉은 글씨의 我獨은 ‘나만 홀로’라는 뜻이에요.
1.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첫 문장부터 오해받기 좋아요. 공부를 때려치우라는 말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노자가 말한 학(學)은 우리가 아는 공부 전체가 아니에요.
48장에 힌트가 있어요. 爲學日益, 爲道日損(위학일익, 위도일손). ‘학문을 하면 날마다 보태지고, 도를 닦으면 날마다 덜어진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學은 사회가 가르치는 옳고 그름, 예법, 지식, 기술 같은 분별의 체계를 말해요.
앞장인 19장의 흐름과도 이어져요. 19장은 똑똑함, 인의, 잔재주와 이익을 끊자고 하다가 見素抱樸, 少私寡欲(견소포박, 소사과욕)으로 끝나요. ‘꾸밈없는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품으며, 사사로움과 욕심을 줄이라’는 뜻이죠. 이 이어짐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일부 판본과 학자들은 絕學無憂를 아예 19장의 마지막 줄로 붙여 읽기도 해요.
그럼 왜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사라질까요? 배운 게 쌓일수록 ‘좋다/나쁘다, 높다/낮다, 이득/손해’라는 눈금이 늘어나요. 눈금이 늘면 자꾸 재고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면 걱정이 생기죠. 우리 속담 “아는 것이 병이다”와 결이 닮았어요.
한 걸음 더 · ‘끊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絕(끊을 절)은 배움 자체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배운 것에 매달려 나를 재고 남을 재는 습관의 고리를 끊으라는 말로 읽는 게 자연스러워요. 지식은 도구로 두고, 그 도구가 나의 근심 제조기가 되지 않게 하자는 거예요.
2. ‘네’와 ‘응’, 그 거리는 얼마일까
唯(유)는 윗사람에게 공손하게 “네” 하고 답하는 소리, 阿(아)는 퉁명스럽게 “어, 응” 하고 답하는 소리로 풀이하는 전통이 있어요. 지금으로 치면 카톡에서 “넵!”과 “ㅇㅇ”(‘응’을 줄인 말)의 차이 같은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이 미세한 차이에 엄청난 의미를 붙여요. 예절, 서열, 외모의 등급…. 노자는 묻습니다. “그 둘 사이가 정말 그렇게 멀까?”
이 물음은 2장과 연결돼요.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세상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알게 되는 순간, 추함이 이미 생긴다’는 뜻이에요. 기준이 생기는 순간 반대편이 함께 생기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등급표 위에서 불안해져요.
이건 오해하지 마세요
노자가 예의를 버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사회가 만든 등급표를 우주의 진리처럼 착각하지 말자는 이야기예요. 예의는 지키되, 거기에 내 존재 가치를 걸지는 말자는 거죠.
3. 두려움의 목록은 끝이 없다
이 대목은 20장에서 해석이 가장 갈리는 곳이에요. 크게 두 갈래로 읽어요.
첫째,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의 솔직한 고백으로 읽는 방법이에요. 평판, 권위, 규범, 늙음과 죽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척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노자가 초월한 척하지 않고 우리 편에 서 주는 대목이죠.
둘째, 다스리는 사람에게 건네는 경고로 읽는 방법이에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위에 선 사람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이에요. 도덕경에 정치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나온 읽기예요.
이어지는 ‘荒兮 其未央哉’는 ‘아득하고 끝이 없구나’라는 탄식이에요. 무엇이 끝이 없을까요? 저는 사람이 만든 두려움의 목록이라고 읽는 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와닿는다고 봐요. 남의 시선, 뒤처짐, 실패, 노후…. 두려워할 거리는 세어보면 끝이 없고, 그중 상당수는 누군가 만든 기준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한 걸음 더 · ‘두려워하지 마라’가 아니에요
노자는 두려움을 없애라고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어요. 이 솔직함 덕분에 뒤에 나오는 고백이 더 믿음직해져요. 도인도 우리처럼 무서워하고 외로워한다는 걸 먼저 인정하고 시작하니까요.
4. 잔치와 갓난아기
여기서부터 ‘나만 홀로’가 본격적으로 나와요. 먼저 장면부터 볼게요.
太牢(태뢰)는 소·양·돼지를 모두 갖춘 가장 성대한 상차림이에요. 春登臺(춘등대)는 봄날 높은 누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는 나들이를 말해요. 지금으로 치면 뷔페 파티에, 벚꽃 놀이까지 한꺼번에 즐기는 사람들이에요.
그 옆에서 노자는 泊(박), 즉 항구에 배를 대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에요. 兆(조)는 싹이 트기 전의 낌새, 孩(해)는 아기가 방긋 웃는 것을 뜻하니, ‘未孩’는 아직 웃음도 시작되지 않은 갓난아기예요.
요즘 말로 하면 다들 파티에 갔는데 나만 집에 있는 기분, 남들의 여행·승진·투자 성공 소식이 줄줄이 올라오는 피드를 보며 혼자 조용히 서 있는 기분이에요. 2천 년도 더 지난 글인데 어쩜 이렇게 지금 이야기 같을까요.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어요. 노자는 “나도 저 잔치에 끼고 싶다”고 하지 않고, 자신을 ‘아직 웃음이 시작되기 전’의 아기에 비유해요. 아기는 뒤처진 사람이 아니라 좋고 싫음, 잘하고 못함이 나뉘기 전의 자리에 있는 존재예요. 도덕경은 10장, 28장, 55장에서도 아기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계속 불러내요.
한 걸음 더 · 원문에도 ‘~인 듯(如)’이 있어요
잔치를 즐기는 뭇사람에게도 원문은 ‘如(~인 듯)’를 썼어요. 정말로 즐거운지는 노자도 알 수 없다는 거죠. 남의 화려한 모습은 늘 ‘~인 듯’ 보이는 겉모습일 수 있어요.

5. 돌아갈 곳 없는 어리석은 마음
20장에서 가장 쓸쓸한 대목이에요. 지친 몸으로 돌아갈 곳도 없는 사람, 다들 넉넉히 가졌는데 혼자 빈손인 사람이 나와요. 有餘(유여)는 남아도는 것, 그러니까 재물, 지식, 재주, 인맥 같은 것이고, 若遺(약유)는 뭔가를 다 흘리고 온 듯한 상태예요.
그러다 노자는 스스로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부르고, 沌沌(돈돈), 흐리멍덩하다고 해요. 沌은 아직 이것저것 나뉘지 않은 덩어리 같은 상태예요. 『장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눈·코·입·귀의 일곱 구멍이 없는 ‘혼돈’에게 친절한 두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주었더니, 이레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예요. 똑똑하게 만들어주려는 친절이 오히려 본래의 온전함을 해친 거죠.
이 어리석음은 반어법이기도 하고 진짜 고백이기도 해요. 45장에는 大巧若拙(대교약졸), ‘가장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다’는 말이 있어요. 겉으로는 어리숙해 보여도 속으로는 꽉 찬 사람이 있다는 뜻이죠. 한편으로는 그 쓸쓸함이 진짜라는 점도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노자는 외로움을 아닌 척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 글이 오래 읽혀왔다고 생각해요.
이건 오해하지 마세요
‘어리석음’은 무지를 자랑하자는 말이 아니에요. 잘난 척, 따지기, 증명하기의 소음을 내려놓은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해요.
6. 환한 사람들, 멍한 나
昭昭(소소)는 환하게 빛나는 똑똑함, 察察(찰찰)은 세세하게 살피고 따지는 깐깐함이에요. 회의에서 바로 의견을 내놓고, 손해 보는 일은 정확히 짚어내는 사람들이죠. 노자는 그 반대편에 서서 昏昏(혼혼, 어둑함), 悶悶(민민, 어수룩함)이라고 스스로를 낮춰 불러요.
‘察察’과 ‘悶悶’은 58장에서 다시 만나요.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정치가 어수룩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꼼꼼히 따지면 백성이 오히려 각박해진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悶悶은 무능이 아니라 넉넉한 헐렁함이에요.
모든 걸 평가하고 점수 매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늘 察察하라고 요구받아요. 가끔은 대충 넘어가는 여유가 있어야 사람이 숨을 쉬어요. 노자의 悶悶은 그 숨구멍을 말하는 것 같아요.
7. 바다와 바람, 그리고 식모
갑자기 바다가 되고 바람이 되는 노자
‘멍하고 어둡고 어리석다’던 사람이 갑자기 바다와 바람이 돼요. 이 전환이 20장의 하이라이트예요.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서 모든 물을 받아들여요. 66장에는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라는 말이 있어요. ‘강과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잘 낮추기 때문’이라는 뜻이에요. 바람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흘러가요. 겉으로는 답답해 보이는데, 속은 바다처럼 깊고 바람처럼 자유롭다는 반전이에요.
그다음 ‘有以(유이)’는 쓸모, 목적, 할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들 저마다 뭔가 ‘할 줄 아는 것’이 있는데, 나는 고집불통에 세련되지 못하다(頑似鄙)고 해요. 마지막 반전을 위한 마지막 자조예요.
마지막 한 줄: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20장 마지막 문장을 풀어 쓴 말
食母(식모)의 母는 어머니, 곧 도(道)예요. 도덕경은 도를 “천하의 어머니”(25장, 52장)라고 불러요. 食은 ‘먹다, 먹여 기르다’라는 뜻이니 食母는 어머니의 젖을 먹는다, 즉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근원에서 양분을 받는다는 뜻이 돼요.
이 구절은 앞에서 본 갓난아기 이미지와 짝을 이뤄요. 아기는 젖을 먹을 때 계산하지 않아요. 재주도 스펙도 필요 없이, 그저 근원에 기대어 살아요. 노자가 잔치에 안 끼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잔치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먹여 살리는 곳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나만 홀로 뒤처졌다”로 시작한 글이 “그래서 나는 다르다”로 끝나요. 같은 외로움인데, 결핍의 외로움이 뿌리 있는 사람의 고요함으로 바뀌는 거예요.
8. 낱말 정리와 흔한 오해
핵심 낱말만 표로 다시 정리해 둘게요. 나중에 필사하거나 복습할 때 쓰세요.
| 한자 | 독음 | 뜻과 메모 |
|---|---|---|
| 絕學 | 절학 | 배움(분별의 체계)에 매달리는 습관을 끊음 |
| 唯 · 阿 | 유 · 아 | 공손한 “네”와 퉁명한 “응”. 사회가 붙인 등급의 상징 |
| 太牢 | 태뢰 | 소·양·돼지를 갖춘 최고급 상차림. 성대한 잔치 |
| 嬰兒未孩 | 영아미해 | 아직 웃지도 못하는 갓난아기. 분별 이전의 상태 |
| 沌沌 | 돈돈 | 나뉘지 않은 덩어리처럼 흐릿하고 순한 모습 |
| 昭昭 · 察察 | 소소 · 찰찰 | 환하고 똑똑함 · 세세하게 따짐 |
| 昏昏 · 悶悶 | 혼혼 · 민민 | 어둑함 · 어수룩하고 헐렁함 |
| 食母 | 식모 | 어머니(도)의 젖을 먹음. 나를 먹여 살리는 근원 |
이 장을 이렇게 읽으면 오해예요
① “공부하지 말라는 말이네?” 아니에요. 배움에 매달려 나를 재고 남을 재는 습관을 놓으라는 말이에요.
② “멍청하게 살라는 말이네?” 아니에요. 똑똑해 보이려는 소음을 줄이라는 말이지, 생각을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에요.
③ “세상과 담 쌓고 혼자 살라는 말이네?” 그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잖아요. 노자는 세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기 뿌리를 지키는 법을 말해요.
판본이 궁금한 분만 펼쳐보세요
이 글은 널리 읽히는 통행본(왕필본)을 기준으로 했어요. 출토본(곽점초간, 마왕퇴백서)과 통행본은 글자와 장 구분이 조금씩 달라요. 20장에서는 두 가지가 눈에 띄어요.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絕學無憂를 19장 끝에 붙여 읽는 견해예요. 다른 하나는 ‘頑似鄙’를 ‘頑且鄙’ 등으로 적은 판본이 있다는 점이에요. 어느 쪽이든 큰 뜻은 같아서, 읽는 데 지장은 없어요.
9. 오늘 우리에게 남는 생각
① 외로움은 결함이 아니라 사람의 기본값이에요
‘나만 홀로’라고 여섯 번이나 쓴 사람의 글이 2천 년 넘게 읽히고 있어요. 그 자체가 위로예요. 내가 느끼는 뒤처짐과 쓸쓸함은 고장이 아니라, 잔치가 큰 만큼 문 앞이 더 조용해 보이는 것뿐일 수 있어요.
② 근심의 절반은 ‘눈금’에서 와요
우리를 괴롭히는 건 대개 실제 문제가 아니라 비교의 눈금이에요. 연봉, 집, 자녀, 건강 지표…. 눈금을 하나 줄이면 근심도 하나 줄어요. 절학무우는 “아무것도 배우지 마라”가 아니라 “내 삶을 재는 눈금을 줄여봐라”로 읽으면 실용적이에요.
③ 똑똑함의 속도를 늦춰봐요
뉴스가 뜨면 곧바로 의견을 내고, 남의 글에 곧바로 반응하고, 늘 무언가를 알고 있어야 하는 시대예요. 昭昭와 察察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용기를 가져봐요. 그 헐렁함이 오히려 관계와 마음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줘요.
④ 쓸모 밖의 시간도 삶이에요
有以, 곧 ‘쓸모와 할 일’이 있어야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노자는 頑似鄙, 쓸모없어 보이는 자리를 오히려 지켜요. 멍하니 있는 시간, 목적 없이 걷는 시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바다처럼 마음이 깊어지는 시간이에요.
⑤ 나의 식모(食母)는 무엇인가요
결국 20장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예요. “나를 먹여 살리는 뿌리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답이 달라요. 자연일 수도, 가족일 수도, 신앙일 수도, 오래 해온 일이나 취미일 수도 있어요. 그 뿌리가 분명한 사람은 잔치에 초대받지 못해도, 혹은 초대받아도 흔들리지 않아요.
세대별로 읽으면
청년에게
뒤처진 게 아니라 ‘아직 웃음이 시작되기 전’일 수 있어요. 남의 잔치 사진을 볼 시간에, 내 뿌리 하나를 정해보세요.
중장년에게
책임과 성과로 촘촘해진 察察의 일상에 悶悶 한 스푼을 넣어보세요. 늘 밝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돼요.
노년에게
평생 배우고 쌓은 것을 이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예요. 절학무우는 배움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배움으로부터의 자유예요.
10. 오늘 해볼 작은 실천
글로 읽고 끝내면 아쉬우니, 부담 없는 것부터 하나만 골라보세요.
- 10분 멍하니 있기알림을 끄고 뉴스와 SNS 없이 창밖만 바라봐요. 沌沌의 연습이에요.
-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말하기오늘 대화에서 아는 척 대신 솔직히 말해봐요. 悶悶의 연습이에요.
- 나의 식모 한 줄 적기“나는 ○○에서 힘을 얻는다.” 한 문장이면 충분해요.
- 아래 ‘필사용 전문’ 소리 내어 한 번 읽기한자가 어려우면 독음만 읽어도 좋아요. 리듬이 좋아서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와닿아요.
함께 읽으면 좋은 장
- 2장아름다움과 추함은 함께 생겨요
- 19장꾸밈없는 바탕으로 돌아가기
- 28장다시 갓난아기로
- 45장큰 솜씨는 서툰 듯해요
- 48장배움은 보태고 도는 덜어요
- 58장어수룩함과 따짐
- 66장낮은 곳의 바다
필사용 20장 전문
공책에 옮겨 적거나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한 줄씩 한자와 독음을 함께 실었어요.
오늘의 한 문장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나만 홀로 남들과 다른 건,
나를 먹여 살리는 근원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다음 21장에서는 ‘도’라는 것이 대체 어떤 모습인지를 이야기해요. 20장에서 “근원을 귀하게 여긴다”고 했으니, 그 근원의 얼굴을 보러 가는 셈이에요. 잡힐 듯 안 잡히는 그 모습, 다음 글에서 만나요.
오늘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공감(♥)과 댓글로 여러분의 ‘나만 홀로’ 같았던 순간을 들려주세요.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이 연재를 이어가는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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