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주는 것'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장애인 개인예산제가 바꿀까?
획일적 '공급자 중심' 복지의 한계와 개인예산제의 등장
현대 사회의 복지 시스템은 대규모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획일적인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칸막이식’ 복지는 개인의 다양하고 복잡한 욕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노출합니다. 특히, 장애인 복지 서비스는 정해진 규격과 절차에 따라 제공되어, 개개인의 삶의 방식과 필요에 맞춘 수요자 중심 복지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장애인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 System)입니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복지의 권한을 공급자에서 장애인 당사자에게로 이양하여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복지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전략입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란 무엇인가? - ‘자기결정권’ 강화를 위한 구조적 혁신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기존의 정해진 바우처 또는 서비스를 받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장애인에게 개별적으로 책정된 예산의 통제권을 부여하고, 그 범위 내에서 본인의 욕구와 상황에 가장 적합한 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자기결정권'의 실질적 보장입니다. 활동지원서비스와 같은 기존 제도가 '시간'이나 '서비스 제공 주체'가 정해진 형태였다면, 개인예산제는 예산의 형태를 유연하게 활용하여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극대화합니다.
핵심 원칙 - 복지 서비스의 '소비자'로서의 권리 보장
개인예산제의 근본적인 철학은 장애인을 서비스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복지 서비스의 소비자로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선진 복지 국가인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 이미 도입되어 장애인의 삶의 질과 사회 참여도를 향상시키는 데 효과를 보인 바 있습니다.
현 정부 역시 이 제도를 국정과제로 추진하며,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에 따라 단계적 도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책 시행 로드맵 - 2026년 본사업 목표와 2024년 시범사업의 내용
대한민국의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은 신중한 단계별 검증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는 제도의 효과성을 확보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 장애인 개인예산제 추진 로드맵 (보건복지부)
- 2023년 (완료): 모의적용 연구 (4개 지역, 86명 참여)
- 2024년 ~ 2025년 (현재): 시범사업 추진 (2년간, 8개 지역, 대상 인원 확대)
- 2026년 (예정): 본사업 본격 도입 및 시행
특히, 2024년 7월부터는 확대된 규모로 시범사업이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시범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 모의적용에서 제기된 한계점들을 보완하려는 구조적 노력이 엿보입니다.
2024년 시범사업의 구체적 내용 - 활동지원급여 20% 할당과 이용 범위의 확대
2024년 시범사업은 장애인 활동지원급여 수급 자격자를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주목할 만한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2024.06.27. 보도자료)
- 개인예산 할당 : 참여자에게 활동지원급여 월 한도액의 20%를 개인예산으로 단일 할당합니다. (모의적용에서는 10% 또는 20%로 나뉘었으나 20%로 통일)
- 이용 범위의 대폭 확대 : 주류, 담배, 복권 구입, 세금/공과금 납부 등 일부 지원 배제 항목 외에는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 이용 계획 수립 및 검토 : 참여자는 장애인복지관 등 복지전문기관의 지원을 받아 개인예산 이용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후 지자체 '시범사업 지원위원회'의 적정성 검토 및 최종 합의를 거쳐 급여 이용이 개시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이용 계획 수립 지원 및 공적 검토 절차를 통해 예산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효과적인 복지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는 구조적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개인예산제의 구조적 과제와 성공 전략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이상적인 복지 모델임은 분명하지만, 성공적인 2026년 본사업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제도가 단순한 구호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시합니다.
1. 예산의 총량 확보 및 서비스 유형의 확대
가장 근본적인 우려는 '예산 총량의 문제'입니다. 경기복지재단의 연구보고서 등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예산의 총량을 늘리지 않고 기존 급여의 일부를 떼어 개인예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수요자 중심 복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예산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기존 서비스에 더해 새로운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 확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현재 활동지원급여 중심인 개인예산의 영역을 발달재활서비스 등 다른 사회서비스 유형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장애인 정책 변화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2. 지역 사회 서비스 인프라의 구축 및 품질 보증
이용자가 아무리 선택권을 가져도, 지역 사회에 선택할 만한 서비스 제공기관이 부족하면 제도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소수 장애인(예: 시각, 청각 장애)의 욕구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다양한 민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또한, 서비스 품질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품질 보증 시스템을 마련하여,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합니다.
3. 전문 지원 인력의 역량 강화 및 이용자 교육
개인예산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복잡한 서비스 계획 수립, 예산 집행, 관리 등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개인별 이용계획 수립을 지원하는 전문 지원 인력(복지전문기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당사자 및 가족이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정보 제공이 필수적입니다.
선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역할입니다.

'세상과 동행'하는 복지 시스템을 향하여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대한민국 사회복지 역사에 있어 수요자 중심 복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거대한 물줄기입니다. 이 제도는 장애인의 삶에 선택권이라는 날개를 달아줄 잠재력이 충분하며, 궁극적으로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세상과 동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2026년 본사업 도입까지 남은 기간 동안, 우리는 시범사업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예산의 충분성, 인프라의 다양성, 그리고 장애인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이 구조적 혁신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모든 시민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더 두텁고 촘촘한 약자 복지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언제부터 시행되나요?
- 👉 보건복지부 계획에 따르면, 2023년 모의적용을 거쳐 2024년 7월부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2026년부터 본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 Q. 개인예산은 현금으로 지급되나요?
- 👉 개인예산은 현금으로 직접 지급되는 방식이 아닌, 개인별 이용계획에 따라 일상·사회활동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예산이 할당되는 방식입니다. 오남용 방지를 위한 공적 관리 절차가 있습니다.
- Q. 개인예산으로 무엇을 살 수 있나요?
- 👉 2024년 시범사업 기준으로, 주류, 담배, 복권 등 일부 지원 배제 항목 외에는 장애인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일상 및 사회활동 관련 재화와 서비스(예: 교육, 문화, 보조기기 등)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습니다.
면책 조항: 본 콘텐츠는 복지 정책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한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법적 권리나 서비스 신청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서비스 이용 및 권리 관련 사항은 관할 지자체 또는 전문 기관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부가 정보
참고 자료 출처: 보건복지부 (2024.06.27. 보도자료), 경기복지재단 복지이슈FOCUS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에 따른 사회서비스 개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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