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의 생애와 영성 깊이 읽기

가톨릭 전례력으로 대림 시기가 시작되는 12월 초, 우리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 중 한 명을 기념합니다. 바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St. Francis Xavier) 입니다. 사도 바오로 이후 가장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주고, 가장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파한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오늘날 모든 선교사의 수호자로서 공경받고 있습니다.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을 맞이하여 그의 생애와 영성,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새겨 봅니다.
1. 세속의 야망에서 하느님의 영광으로 : 회심의 여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 나바라 왕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뛰어난 지성과 야망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파리 대학에서 유학하며 교수가 되어 명예와 부를 얻고자 했던 그의 삶은, 룸메이트였던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바로 예수회(Society of Jesus) 의 창설자,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였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오 16,26)
이냐시오 성인이 끊임없이 던진 이 복음 말씀은 세속적 성공을 꿈꾸던 하비에르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결국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께 투신하게 됩니다.
1534년,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청빈과 정결, 그리고 교황에 대한 순명을 서약하며 예수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쇄신과 전 세계적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출처: 가톨릭대사전 (2024)]
2. 동방의 사도 - 한계를 뛰어넘은 선교 열정
1541년, 포르투갈 국왕의 요청으로 그는 인도로 떠나게 됩니다. 당시의 항해 기술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는 인도 고아(Goa)에 도착한 이후,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의 선교 방식은 단순히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습니다. 병자들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온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 시기 | 주요 활동 지역 | 핵심 활동 내용 |
|---|---|---|
| 1542년 | 인도 고아 | 병원 봉사, 어린이 교리 교육, 파라바족 선교 |
| 1545~1547년 | 말레이시아, 몰루카 제도 | 동남아시아 선교 거점 마련, 수많은 개종자 탄생 |
| 1549~1551년 | 일본 가고시마, 야마구치 | 일본 최초의 가톨릭 선교, 지식인들과의 대화 |
| 1552년 | 중국 상천도(Sancian) | 중국 선교를 꿈꾸며 입국 대기 중 선종 |
특히 일본 선교는 문화적 적응주의(Inculturation)의 초기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는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며 복음이 그들의 토양 안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후대 선교사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3. 주님, 저를 당신의 일할 밭에 일꾼으로 써주소서.
하비에르 성인의 초인적인 활동의 원동력은 바로 깊은 기도와 영성 이었습니다. 그는 낮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했지만, 밤에는 하느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영적 힘을 얻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유럽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파리 대학의 지성인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고 썼습니다.
그의 이러한 호소는 '영혼에 대한 갈망(Da mihi animas)'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서라면 지옥의 문턱까지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핵심적인 영성입니다.
4. 미완의 꿈과 영원한 안식
일본 선교를 마친 하비에르 성인은 아시아 선교의 열쇠가 중국에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굳게 닫힌 중국의 문을 열기 위해 그는 1552년, 광동성 앞바다의 작은 섬 상천도(Sancian Island)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과로로 인해 그는 심한 열병을 앓게 됩니다.
결국 1552년 12월 3일, 그는 중국 대륙을 눈앞에 두고 46세의 나이로 선종합니다. 비록 그의 발은 중국 땅을 밟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훗날 그의 꿈을 실현하게 됩니다. [🔗 출처: 예수회 한국관구 역사 자료 (2023)]
5. 우리 삶의 선교지
오늘날 우리는 박해 시대나 미지의 땅을 개척하던 시대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날의 선교는 단순히 해외로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관심과 냉담함이 팽배한 우리 주변,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가 바로 현대의 '선교지'입니다.
하비에르 성인이 보여준 '열정'과 '사랑'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를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정직한 삶의 태도,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나눔이 바로 21세기의 순교이자 선교입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iorem Dei Gloriam)"라는 예수회의 모토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12월 3일, 그의 축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의 신앙 온도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복음을 향한 열정이 남아 있을까요? 현실의 안주함을 넘어, 하느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떠날 용기가 있습니까?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작은 사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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