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감주는글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관계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

by ohmyworld 2026. 2. 24.
반응형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대상이 아닌 ‘너’로 살아간다는 연습”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읽다 보면 가끔 길을 잃는 기분이 들어요. 이 책이 철학책인지,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문인지, 아니면 아주 조용히 건네는 고백서인지 헷갈릴 때가 많거든요. 논리를 따라가며 머리로 이해하려 하면 문장들이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마음을 툭 내려놓고 읽으면 단 한 줄의 문장이 심장 근처에 아주 오래 남습니다.

반응형

 

부버는 인간의 삶을 두 가지 태도로 나눠서 설명해요. ‘나-그것(I-It)’과 ‘나-너(I-Thou)’.

우리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나-그것’의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계는 효율과 결과, 역할과 기능이 지배하는 곳이죠. 직장에서 동료를 대할 때,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할 때, 심지어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우리는 그들을 ‘필요’나 ‘기능’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편하니까요. 어쩌면 그 차가운 방식이 아니면,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관계의 무게를 버티기 힘든 날도 많을 거예요.

기능과 역할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직장 내 인간관계

 

그런데 부버는 나지막이 말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그것’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너’를 만날 때만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요.

여기서 ‘너’는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이해해서 정복해야 할 정보도 아니고,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지 계산해야 할 도구도 아니에요. 그저 내 앞에 마주 선 존재 그 자체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통하는 순간, 아무런 말이 없어도 서로의 진심이 닿는 경험. 부버는 바로 그때 우리가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문장들을 가만히 짚어가다 보니 문득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삶이 너무 버거워 주저앉고 싶었을 때, 누군가 건넨 짧은 말 한마디에 다시 숨을 쉬게 되었던 순간들. 대단한 조언이나 해결책을 준 건 아니었지만, 그저 묵묵히 옆에 있어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들. 그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영혼과 영혼이 맞닿은 ‘만남’이었죠.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찰나였을 거예요.

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찰나였을 거예요.
힘든 순간에 말없이 곁에 앉아 위로를 건네는 두 사람의 조용한 만남

 

부버는 신에 대해서도 같은 언어를 씁니다. 신은 우리가 연구해야 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궁극의 너’**라고요. 그래서 이 책은 종교를 떠나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영성을 건드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기도란 무엇일까, 수행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대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태도 아닐까요.

우리는 참 너무 쉽게 사람을 ‘그것’으로 만듭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점수를 매기고, 효율에 따라 분류하죠. 슬픈 건 우리가 스스로에게조차 그렇게 대한다는 거예요.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해”

성공과 실패, 능력의 유무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인격적인 ‘너’가 아니라 관리 대상인 ‘그것’이 되어버립니다. 스스로를 도구로 대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온전한 존재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와 너』가 조용히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결국 이것 같아요. “당신은 오늘, 누구를 ‘너’로 만났나요?”

스스로를 도구로 대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온전한 존재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를 ‘그것’으로 대하는 현대인의 내면적 고독

 

세상의 모든 관계가 항상 깊을 수는 없고, 우리가 매 순간 ‘나-너’로 살아갈 수도 없겠지요. 부버도 삶의 고단함을 알았기에 그걸 강요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삶의 길목 어딘가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진실한 ‘나-너’의 경험이 있다면 그 삶은 이미 메마르지 않았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을 당장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마음은 들지 않아요. 다만 내 앞의 사람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되고, 내 말을 앞세우기보다 가만히 듣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728x90

 

어쩌면 영성이란 더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아니라, 단 한 존재라도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화려한 수식어를 다 떼어내고, ‘나’와 ‘너’ 사이에 조용히 서는 일일 겁니다.

오늘 하루,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를 ‘그것’이 아니라 따뜻한 ‘너’로 불러보는 것. 마르틴 부버는 우리에게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결정이 두려운 당신에게, 안셀름 그륀이 건네는 위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