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無用之用) :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쓸모 있다
현대 사회는 '충만함'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꽉 찬 스케줄, 가득 찬 통장 잔고, 넘치는 정보가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2,500년 전, 동양 철학의 거장 노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진정한 쓸모는 '있음(有)'이 아니라 '없음(無)'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도덕경 11장 해석을 통해, 채움에 지친 우리에게 필요한 비움의 지혜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노자 무의 철학을 만나보십시오.

1. 도덕경 11장 원문과 현대적 해석
노자는 세 가지 비유(바퀴, 그릇, 방)를 통해 '무(無)'의 효용성을 설명합니다. 원문의 깊은 맛을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 원문 (한자) | 독음 | 해석 (의역) |
|---|---|---|
|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
삼십복 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축에 모이지만, 그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수레로서 쓸모가 있다. |
| 埏埴以為器 當其無,有器之用 |
연식 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지만, 그 안이 비어 있어야 그릇으로 쓰인다. |
| 鑿戶牖以為室 當其無,有室之用 |
착호유 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그 빈 공간이 있어야 방이 된다. |
마지막 구절인 "고유지 이위리, 무지 이위용(故有之以為利,無之以為用)"은 이 장의 핵심입니다. 형체가 있는 것(有)은 이로움의 수단이 되지만, 실제적인 쓰임(用)을 만들어내는 것은 형체가 없는 빈 공간(無)이라는 뜻입니다. [출처: 동양고전연구회, 도덕경 완역]

2. 사물로 보는 통찰: 바퀴, 그릇, 그리고 방
노자의 비유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입니다. 이 세 가지 사물은 모두 비어 있음이 쓸모가 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바퀴의 중심 (Hub)
수레바퀴의 살(spoke)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작 수레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살들이 모이는 중심축의 '빈 구멍'입니다. 만약 그곳이 꽉 차 있다면 바퀴는 회전할 수 없습니다. 이는 리더십이나 조직 관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가 모든 실무를 꽉 채워 장악하려 하면 조직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리더의 여백이 구성원의 움직임을 가능케 합니다.

그릇의 안쪽 (Vessel)
우리는 그릇을 살 때 겉모양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러나 그릇의 본질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빈 공간'에 있습니다. 흙(재료)이라는 '있음'은 그릇의 형태를 잡아주는 이로움을 주지만, 실제 그릇의 가치는 비어 있는 안쪽 공간이라는 '없음'에서 나옵니다.
방의 공간 (Room)
벽과 지붕은 방을 구획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곳은 벽 자체가 아니라 벽 사이의 빈 공간입니다. 문과 창문 역시 벽을 뚫어낸 '빈 곳'이기에 통로와 채광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있음(有)'은 조건을 만들고, '없음(無)'은 기능을 완성합니다. 우리는 조건에 집착하느라 정작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 동양철학 성찰: 우리는 왜 '채움'에 강박을 갖는가
이 장을 묵상하다 보면 마음의 속도가 한 템포 느려짐을 느낍니다. 현대인은 결핍에 대한 공포때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 합니다. 더 많은 소유, 더 높은 지위, 더 빽빽한 지식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자는 역설합니다. 꽉 찬 것은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습니다. 노자 무의 철학은 단순히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과 생성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 이상 따를 수 없듯, 우리의 삶도 이미 확정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4. 삶의 여백: 일상에 '무(無)'를 적용하는 법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 비움의 지혜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추상적인 철학을 구체적인 삶의 전략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 일정의 여백: 스케줄러에 빈칸이 보이면 불안해하며 약속을 잡지 않으시나요? 빡빡한 일정은 돌발 상황에 대처할 유연성을 앗아갑니다. 하루 30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배정해 보세요.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당신의 하루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바퀴의 축)가 됩니다.
- 재정의 여백: 자산의 모든 부분을 부동산이나 묶인 자금으로 채우면, 위기 상황에서 선택권이 사라집니다. 일정 비율의 현금 유동성(비어 있는 자금)은 경제적 자유의 숨통을 틔워줍니다.
- 마음의 여백: 생각이 가득 차 있으면 타인의 말이 들리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명상이나 산책을 통해 의도적으로 생각을 비워내는 행위는 동양철학 성찰이 주는 최고의 정신 건강법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만성적인 불안은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삶의 여백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없음'은 결핍이 아니라, 삶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덜 채워도 괜찮은 하루
노자는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有之以為利,無之以為用)"이라 말했습니다. 이익(利)을 추구하는 삶도 필요하지만, 쓰임(用)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비움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 '얼마나 가졌는가'를 묻지만,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지금 충분히 비워져 있는가'일지도 모릅니다. 비워야 쓸 수 있고, 비워야 움직이고, 비워야 비로소 삶이 생동합니다.
오늘은 무언가를 더 채우려 애쓰기보다, 의도적으로 비어 있음이 쓸모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조금 덜 채워도, 당신의 하루는 충분히 온전합니다.
'영감주는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돈은 인격을 닮는다 『돈의 속성』 을 읽고, 숫자 너머의 이야기를 생각하다 (0) | 2026.02.05 |
|---|---|
| 김상운 왓칭, 꼬인 인생을 푸는 가장 조용한 방법 (0) | 2026.02.01 |
| 투자의 본질은 승리가 아닌 생존이다! 윌리엄 번스타인의 교훈 (0) | 2026.01.27 |
| 폰 노이만과 AI,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를 묻다 (0) | 2026.01.25 |
| 피터 틸의 제로 투 원, 주식 투자에 적용하는 법 (0) | 2026.01.16 |
댓글